나의 작업은 일상적이고 소소한 물건의 형태에서 시작된다. 흥미를 유발하는 다양한 색과 인공적인 형태를 수집, 기록하고 새롭게 배열해 표현한다. 책상 위에 널린 종이조각, 운전하며 보는 도로 위 점선, 오류가 발생한 컴퓨터 화면, 거리에 그려진 낙서, 공사장의 널브러진 전기선, 갈라진 아스팔트까지 다양한 색과 도형, 시각 요소에서 작업이 시작된다. 이렇게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요소에서 의외의 형태를 포착하여 이를 캔버스 위에서 분리하거나 파편화시켜 이전보다 이질적이고 낯설게 구성한다.
나는 눈에 잘 띄지 않거나 사람들이 지나쳐버리는 사소한 일상의 장면을 자주 포착한다. 이를테면 집에서 멀지 않은 공장에는 둥근 형태의 외벽 건물이 있고, 그 옆으로 건설 중인 아파트의 철근이 격자무늬처럼 촘촘하게 세워져 있다. 아래는 '분양문의'라고 쓰인 주황색과 노란색 현수막이 흔들리고 있다. 나는 이러한 이미지의 잔상을 부분적으로 인식하고, 이전에 수집한 이미지와 작업실 바닥에 떨어진 물감과 잘려진 종이의 외곽선을 조합하기도 한다.
규칙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평면 작업을 확장해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해보고자 한다. '의미 없는 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 내 작업을 통해 관객에게도 같은 변화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나아가 이러한 변화가 쌓여 예술의 긍정적 순환 효과를 끌어내고자 한다.
수하담 아트스페이스에서 2020년 9월 11일부터 10월 18일까지 임민정의 < 방향의 집합 >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평면작업에서부터 설치작품과 오브제, PVC, 윈도우페인팅 등으로 구성된 28점 작품이 공개된다.
임민정은 일상에서 수집한 형태에서 출발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물질과 비물질로 나눠서 정의한다. 서로 다른 요소를 한 화면에 풀어내는 과정에서 미묘한 긴장감을 연출하면서도, 다양한 요소를 배치해 새로운 시각적 화면을 실험한다. < 연약지반 > 연작을 기반으로 오브제를 제작하여 벽면에 설치하고 작품의 근원적인 요소를 활성화 시켰다. 전시장 한 면을 채우고 있는 유리창에는 4미터 크기의 네온 컬러 PVC 필름이 설치되어 있다. 인공적이며 가벼운 퍼즐처럼 놓여 있는 형상이 바깥풍경과 대조적으로 비춰진다. 수하담의 계단에 있는 유리창에는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납작하게 붙어있다. 캔버스가 아닌 유리창에 있지만 결국 회화의 연장선상이다. 명암 없이 그려진 형태는 캔버스를 쉽게 벗어나기 때문이다. 평면적인 화면이 유리라는 매체를 통해 담아내기도 또는 반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각적인 면은 표현방식에 많은 가능성을 제시한다.
“수하담 아트스페이스는 재미있는 공간입니다. 화이트큐브가 2개 존재하고 높이만 6미터에 가까운 높은 창에, 시멘트벽으로 마감이 되어 공간에서 양면성이 느껴집니다. 이곳에 잘 융화되면서 저만의 전시를 구성하는 게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습니다.
화이트 큐브인 두 공간에는 평면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하며 종이와 캔버스 천에 그려진 수십개의 작업을 2개의 나무행거에 널어 설치하였습니다. 캔버스라는 틀이 없는 날 것의 상태의 그림이 과장되지 않는 형태로 보여 지길 고민하던 중 침대시트를 세탁하고 널어둔 그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었습니다. 적당한 사이즈로 나무를 재단하고 조립해 설치하였고 관객들이 가볍게 만져볼 수 있도록 쉽게 접근하고 싶었습니다.
장소에 기반을 둔 프로젝트(전시)를 진행하면 새로운 탐험을 하는 기분이 듭니다. 공간을 조사하고 이해하며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압박감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묘한 해방감을 얻습니다. 그것은 작업에 긍정적인 원동력을 제공해서 끝까지 완료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임민정, < 방향의 집합 >에 관하여
이번 전시는 그동안의 여러 전시를 통해 작가가 펼쳐낸 이야기를 ‘수하담’ 이라는 공간에서 새롭게 구성하여 진행된다. 캔버스에서부터 설치작품과 오브제, PVC, 윈도우페인팅 등 < 방향의 집합 >을 통해 작가가 그동안 실험하고 변화를 모색한 결과물을 볼 수 있다.
H CONTEMPORARY GALLERY는 2020년 7월 16일부터 21일까지 임민정의 초대 개인전 『연약지반』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임민정은 다채로운 색채와 과감하고 실험적인 형태가 조화를 이룬 신작 회화를 포함한 작품 16점을 공개한다.
" ‘연약지반’이라는 단어는 운전하면서 스치듯 본 도로 표지판에서 따왔다. 서해와 가까운 경기도 서쪽에 살면서 '연약지반'이라고 쓰인 표지판을 심심찮게 마주쳤다. 처음엔 '연약지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졸음 주의'나 '안개 주의'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대응할 수 있지만, '연약지반'을 맞닥뜨렸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의미를 곱씹으며 운전하는 동안 머리 위로 갖가지 이미지가 반복해서 떠올랐고, 내 상상 속 이미지와 ‘연약지반’에 둘러싸인 도시에 거주하며 수집한 형태를 묶어 화면에 다채롭게 구성했다."
- 임민정, 『연약지반』 작가 노트
임민정은 조각난 기억에 시각적 자극을 얹어 분리되고 파편화된 화면을 선보인다. 주변에서 수집한 형태, 자기 생각과 감정을 물질과 비물질로 나눠서 정의한다. 서로 다른 요소를 한 화면에 풀어내는 과정에서 미묘한 긴장감을 연출하면서도, 다양한 요소를 배치해 자연스러운 조화를 꾀한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단어 '연약지반’에서 파생한 여러 요소를 분리해 캔버스에 새롭게 구성하고, 화면을 분할하는 등 풍부한 공간감을 담은 풍경을 탄생시킨다.
그동안 작가가 즉흥적이고 직관적인 태도로 완성한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면, 이번 < 연약지반 > 전시에서는 작가가 치밀하게 계산해 연출한 화면에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더한 새로운 결과물을 볼 수 있다. 임민정이 기존의 추상적 사고는 유지하면서도 더욱 섬세하게 관찰하고 실험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다.
인간은 온갖 시각적 자극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일상에서 맞닥뜨린 수많은 이미지의 잔상과 기억을 저장하지만, 이내 잊는다. 임민정은 이렇게 저장과 변화, 망각을 거듭하는 시각적 자극과 기억을 주목한다. 자신을 둘러싼 풍경이나 사물에서 인공적이고 반복적인 색채나 형태를 찾아내고, 그러한 형상이 남기는 잔상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한다.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 경험을 거친 이미지 정보, 잠재된 기억 등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반응한다.
작가의 머릿속엔 무의식적으로 경험한 일상과 사물에 대한 기억이 파편적으로 쌓여 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잊거나 시간의 흐름이 지워버린 잠재 기억을 캔버스로 불러들인다. 특히 많은 이가 관심을 두지 않는 사소한 요소에 몰두한다. 본래 기능을 상실한 채 파편화돼 흩어진 작은 기억 조각은 작가의 손을 거쳐 화면의 중심이 된다. 소소한 일상이 쌓여 삶을 만들듯 임민정의 작업 역시 작은 요소가 모여 완성된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생에서 생명력을 잃은 기억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나아가 사소한 단위가 촘촘히 쌓여 만들어가는 삶의 의미를 되짚는다.
작가가 그동안 ‘조각모음’이라는 이름 아래 사물 조각을 끌어왔다면, 이번엔 그렇게 모은 조각으로 자신만의 구조를 쌓아 올린다. 자신이 발견하고 축적한 시각 요소를 모아 새로운 화면을 구축한다. 단순히 대상을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인식한다. 주변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눈에 남은 잔상과 사물의 단편적 모습에서 여러 도형을 분리한 다음 캔버스에 배치한다. 일상의 한 부분에서 경험한 일과 잠재적 기억을 조합해 새로운 화면을 창조하는 것이다. 다양한 사물의 움직임이 작가라는 매개를 거쳐 화면 위에서 조형적 관계를 맺는다. 작가는 자신이 마주한 대상의 본질을 주목하면서도 주관적 해석을 더해 비로소 작품을 완결 짓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추상 형태에 다양한 방식으로 생명력을 부여한다. 대형 화폭을 오가던 도형을 캔버스 밖으로 끌어내 오브제를 만들고, 커다란 캔버스와 대치시킨다. 캔버스에서 독립한 오브제는 개방된 환경에서 단독으로 존재하며 각자의 소리를 내며, 추상화의 영역을 확장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한다. 작품은 관람자의 감정이나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낳는다. 자신만의 기억 조각을 조합하며 작품을 관람한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새로운 정물화를 탄생시킬 수 있다.
정물로 나아가다 만 형상 : 임민정 < New-Still Life >
새로움에 대해 우리가 거는 기대와 실천 태도는, 사실 어쩌면 두 얼굴로 과거와 미래의 정반대 방향을 동시에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술사에서 ‘신’ 혹은 ‘뉴(New)’가 붙은 사조를 보면, 이전 것과 비슷하나 새로운 특징을 찾았을 경우 이 같은 수식어를 종종 붙인다. 다만 여기서 새로운 사조를 가리킬 때, 무에서 태어난 신적인 창조물보다 원류에서 하류로 방향성을 지니고 흘러가듯이, 원천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때, 발전되든 혹은 아류로 불리든지 간에, 그 출발점과 간격이 멀리 벌어지면 원래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여기서 설명하고 싶은 새로움이다. 단절과 무에서 태어나는 창조과 달리 원천으로부터 간격이 벌어지면서 이질감이 개입된다. 원류와 파생된 사태는 연장선 상으로 묶을 수는 있어도, 두 개를 똑같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새로움이라는 말은 모순적인 성격을 동반한다. 회고와 발전, 즉 한쪽에서는 미래를 향해, 다른 한쪽에서 과거를 뒤돌아보는 두 얼굴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움이란, 새로운 요소와 과거의 양상, 이 두 가지를 같이 끌어안은 결합체, 즉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연속선으로 볼 수 있다.
가변크기에서 소개된 작가 임민정의 작업은 크게 회화의 오브제로 나눌 수 있다. 한쪽에 회화 작업이 보이고, 또 다른 한쪽에 오브제가 보이는데, 이 작품은 캔버스에 (재현적으로) 그려진 추상적 형상이 하나씩 떼어내듯 전시장 벽에 걸려 있다. 작가는 후자를 ‘분리된 평면 오브제’ 라 부르는데, 작품 제목 그대로 회화작업에서 그려진 형상들이 전시장 벽에 걸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작업 유형의 연관성은 굳이 제목을 알지 못해도 시각적으로 포착된다. 표현과 모티프는 두 작업에서 서로 같아 보이고, 개별 형상들이 정착된 매체를 제외하고는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니 사실상 캔버스가 있고 없고 하는 차이를 생각하지 않으면, 형상자체에 차이를 따져볼 이유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아니 그렇기 때문에 캔버스의 유무를 고려하여 작품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캔버스가 없는 경우, 형상들은 캔버스의 테두리가 긋는 물리적 제한을 떠나 보다 넓은 전시공간으로 이동하면서 다소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작가의 오브제 작업은 회화의 성격을 지니는데, 이때 단순히 아크릴 물감으로 그렸다는 사실만 보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회화의 성격이란 환영의 창출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려진 형상의 납작함과 그것들이 벽에 붙어 있다는 사실에서, 작가의 오브제 작업이 회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대상의 납작함, 그러니까 포스터칼라를 써서 명암 없이 그린 것과 같은 표현자체에 회화의 성격이 나타난다. 평평한 하나의 스티커처럼 보이는 표현방법 자체에 이미 이차원적 표현성이 내재되어 있다. 캔버스 위에서 형상들은 스티커를 붙여가면서 공간감이 생기는 것과 같이, 등장하는 레이어들끼리 겹쳐 쌓인 얇은 공간(감)을 창출한다. 이는 펜으로 그린 드로잉을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형상자체가 레이어를 끼어넣은 듯 존재하고, 형상 하나에 명암과 다른 색깔이 들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캔버스 위에 나타난 형상 자체의 이러한 납작함이 결과적으로 캔버스를 떠나게 만든다. 개별 형상자체의 고립은 그것들을 스스로 캔버스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벽에 붙은 형상들은 독립적일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요소들과 어울리는 가능성 또한 포함한다. 제한적인 캔버스 영역보다 좀 더 자유로운 공간에서 작가는 형상들에게 또 다른 표현공간을 허락해준다. 그렇지만 이때 형상자체는 벽에 걸려 작품이 될 때, 회화에서 드러난 레이어를 상실하고 다시 평면으로 돌아온다. 이들은 서로 겹치지 않은 채 오브제로 따로따로 전시되는데, 오히려 캔버스에 표현되었을 때가 공간감의 깊이가 있었다. 오브제로서 제작되는 형상들은 좀 더 넓은 공간을 수용하지만 이번 작업에서 사실상 다시 평면으로, 즉 전시공간 벽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럼에도 캔버스의 우무에 따른 확실한 차이는 점과 선, 그리고 면이 캔버스의 그 특수한 공간에서 (테크닉적인) 재현으로 각각 인식되었다면, 벽에 달라붙는 형상은 얇은 두께를 통해 면 그자체가 된 성격을 인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은 더더욱 오브제보다 회화에 가깝다. 바닥이나 좌대에 놓이지 않고, 그러면서 공간감을 거의 전시공간이라는 보다 실질적인, 단순한 비유가 아닌 ‘하나의 평면’으로 환원시키면서 작품에서 오브제의 성격이 거부되고 있다.
이번 전시 타이틀이 < New-Still Life >인데, 여기서 새로움, 그러니까 ‘New’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정물화의 일반적인 범주에서 작가는 정물 그 자체에 회화의 재현 요소를 근접시켰다. 술병이나 과일이 캔버스 위에서 포착된 시기를 시작으로 20세기에 새로운 매체를 통해, 예를 들어 샘 테일러 우드(Sam Tayler-Wood)의 영상에서 시간이 개입되고, 코세무라 마미(Kosemura Mami)와 로라 레틴스키 (Laura Letinsky)가 사진으로 대상―전자는 버려진 물건을, 후자는 일상적 삶의 흔적을―을 포착하였듯 정물화는 그때까지 여러 매체를 통해/에 따라 해석되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오브제 작업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새로움이란, 정물‘화’라는 말이 그렇듯 회화에 근거하면서 형상들이 정물 그 자체로서 나타난다. 이때 표현의 대상인 형상과 표현매체의 괴리는 사라진다. 그러니까 캔버스 위의 그려진 대상이 아니라, 그려진 모양이 오브제 자체로서 나타난다. 그런데 형상들이 그 자체로 물질적인 오브제로 발전될 가능성이 작가의 납작하게 그리는 표현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 여러 색을 섞어 명암과 재현적 공간감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린 대상이 평면적인 오브제가 되는데, 이때 더 이상 재현된 형상이 아니라 오브제 자체가 된다. 따라서 제목이 < 분리된 평면 ‘형상’ >이 아닌 이유는, 그것들이 분리되어 ‘오브제’가 된 형상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형상은 완벽한 오브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때, 관람자는 작품에서 새로움의 두 얼굴을 마주보게 된다. 재현에서 형상자체가 되어 공간으로 나아가는 모습과 여전히 캔버스 역할을 대신하는 지지체를 통해 벽에 붙어 있는 형상들이 거기에 있다―벽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향해, 그리고 한편으로는 캔버스를 그리워하면서.